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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의 ‘조선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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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천 성곽군2021-08-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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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 호로고루성벽과 당포성<1>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은 40m,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재미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돌의 양이 애략 15.996m2 dp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잇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만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이어 벌어진 나당전쟁에 신라가 승리하자 신라가 점령하여 사용하였다. 신라군이 점령할 당시 호로고루 동벽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성벽의 곳곳이 무녀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라군은 고구려 성벽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셔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으로 보수하였는데,고구려성벽은 신라성벽에 가려져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포대가 설치되면서 성벽의 윗부분과 남쪽 부분이 크게 훼손되었고 고구려 유적으로 알려지기 이전 마을 주민이 뱀을 잡기 위해 중장비로 남쪽 치의 상부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고구려 성벽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게 되엇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후대의 인위적인 원인으로 훼손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로고루 동벽은 한곳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다.

 

호로고루 동벽 남쪽 치()

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 할 수 있도록 성벽 앞으로 내어 쌓은 구조를 말하는데 ,호로고루 동벽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치가 있다.

남쪽치는 성벽의 상부가 훼손되면서 내부의 모습이 겉으로 들어나 성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치의 제일 안쪽 가장 높은 성벽은 고구려의 체성벽으로 바깥쪽에 기대어 쌓은 보축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고구려 보축성벽에서 바깥쪽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편마암으로 쌍은 성벽이 보이는데 이는 후대의 신라가 쌓은 성벽이다. 이 성벽 앞으로 네모나게 바깥쪽으로 내어 쌓은 성벽이 잇다. 이것이 동벽의나도 치다. 치는 다시 현무암의 기초를 가진 반원형의 성벽으로 다시 둘러져 있는데, 치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성벽은 95%이상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잇는 현무암으로 쌓은데 반해 신라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편마암이 사용 되었다. 현무암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0 ,오랫동안 임진강 일대를 지배하며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한 고구려의 석공들에 비해 새롭게 임진강 지역을 차지한 신라의 석공들은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가 없어서 다루는데 익숙한 편마암을 머리서 가져와 성벽을 쌓는 수고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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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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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면 해바라기가 군락을 이루어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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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하늘과 맞닿는 천국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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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단도 조성되어 있다


당포성 동벽(唐浦城 東壁)

당포성의 동벽은 성내로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성의 규모는 높이 6m, 31m, 길이 50m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지만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의 구조이다.

중심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포 6m,깊이 3m의 구덩이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홈이 관ᅟᅡᆯ되는데-,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패왕조산성,당포성 동벽엣는 수직의 기둥홈이 하부의 확과 세트를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는 성벽의 훼손 및 붕괴 위험이 있어 흙을 덮고 잔디를 식재하여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당포성(사적 제468)

당포성은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 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면(동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내부를성으로 사용하였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엿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당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잇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히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지만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하엿다. 이 때문에 성내부에서는 고구려 기와와 함께 신라 기와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고구려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쌓은 평지성이다.

당포성은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 되어 있는데, 높이 20m 에 달해 별도로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자연 성벽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돌로 쌓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점은 연천일대 고구려 성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당포성 남쪽 성벽인 주상절리 절벽은 다양한 주상절리의 모양과 함께 하천의 침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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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 주상절리- 일종의 성벽 역활도 하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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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고로성#당포성#연천성곽#연천주상절리#해바라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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